
2018년 개봉한 영화 ‘궁합’은 사극과 로맨스를 절묘하게 엮어낸 이색적인 작품이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궁중 권력 다툼을 넘어, 조선 시대의 혼인 문화와 운명에 대한 민간 신앙을 흥미롭게 녹여내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시나리오의 구조가 고전적인 삼막 구조에 충실하면서도, 독창적인 전개 방식으로 차별성을 확보한 점이 주목된다. 본 글에서는 ‘궁합’의 시나리오를 도입, 전개, 위기의 세 구간으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주제와 서사 구조의 힘을 살펴본다.
도입 - 전통 혼사 시스템과 갈등의 씨앗
‘궁합’의 도입부는 조선 시대 혼인을 관장하던 ‘혼서지’ 제도를 배경으로 한다. 이는 사주팔자를 바탕으로 궁합을 맞춰 혼인을 결정짓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당시 민중뿐 아니라 왕실에서도 이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설정이다. 주인공 송화옹주(심은경)는 정치적 혼인을 앞두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개인의 결혼이 아닌, 국가와 권력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으로 그려진다.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궁합쟁이 서도윤(이승기)은 백성의 관점에서 혼사의 진실성과 사주팔자의 맹점을 꿰뚫는 인물로 설정된다. 도입부는 이들의 배경과 성격을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설명하며, 인물 간의 갈등과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한다. 특히 옹주가 혼인을 거부하고 자주성을 가지려는 태도는 기존 사극에서 보기 어려운 여성 주체성의 서사를 암시하며, 도입부터 신선함을 부여한다. 시나리오 작가는 이 단계에서 풍자와 유머를 적절히 활용해 무겁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시작을 만들어낸다.
전개 - 개인의 운명과 정치적 의도 사이
도입부에서 갈등의 씨앗을 심었다면, 전개부는 이를 본격적으로 키워나간다. 서도윤은 왕실의 명을 받아 옹주의 궁합 대상자를 선정하게 되며, 여기서 총 여섯 명의 후보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주를 지녔으며, 이를 통해 영화는 다양한 성격과 인간 군상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관객은 각 후보자와 송화옹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혼인과 삶의 방향에 대해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된다. 한편, 이 궁합 선정이 단순한 사적인 일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권력의 정쟁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혼인 상대에 따라 정치 세력의 균형이 바뀌는 구조는 영화에 스릴감을 부여하며,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 과정에서 시나리오는 전통 관습과 개인의 자율권 사이의 충돌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영화의 메시지를 서서히 드러낸다. 전개부는 유머, 로맨스, 정치극이 조화를 이루며 장르적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궁극적으로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데 집중한다.
위기 - 진실의 발견과 자주적 선택의 클라이맥스
위기 구간에서는 송화옹주와 서도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갈등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혼인의 진실이 정치적 음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옹주는 자신이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가 아닌, ‘누구를 믿고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서도윤 역시 단순한 궁합쟁이를 넘어 진실을 추적하는 인물로 성장하며, 영화의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한다. 이 시점에서 시나리오는 이전까지의 유쾌한 분위기에서 한층 무거운 톤으로 전환된다. 왕권 다툼과 권세가의 암투 속에서 개인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것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를 강하게 메시지 화한다. 특히 송화옹주가 왕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내리는 장면은, 여성 주체성을 강조하는 현대적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위기 구간은 단순한 플롯의 고조가 아니라, 인물 내면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정점을 찍는다. 결국 이 클라이맥스는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닌, 변화의 가능성과 주체적인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궁합’은 전통적인 배경 속에서도 현대적인 문제의식을 탁월하게 녹여낸 영화다. 시나리오 구조 역시 전통 삼막 구조를 따르면서도, 각 구간마다 서사적 의미와 인물의 성장,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치밀하게 배치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도입에서는 전통과 개인의 갈등, 전개에서는 정치적 음모와 감정의 교차, 위기에서는 자율성과 사회 변화의 가능성이 중심 테마로 자리잡는다. 이처럼 ‘궁합’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나 사극을 넘어, 인간의 선택과 운명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확장된다. 스토리텔링의 구조가 촘촘히 설계되어 있기에, 관객은 재미와 감동은 물론, 주제를 향한 통찰까지 경험할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독자 역시 이야기 구성의 중요성과 영화 속 구조적 미학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기를 바란다.